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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일차] 뉴욕타임스 과학 기자가 쓴 면역학 책 리뷰, 우아한 방어 (우리 몸을 지키는 면역학의 놀라운 비밀)

과학커뮤니케이터 TKM 2025. 2. 19. 11:27

 

 

안녕하세요, 이번 글에서는 최근에 재밌게 읽은 책인 '우아한 방어(An Elegant Defense)'를 가볍게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방어가 먹고 싶은 강아지

 

 

 

본 책의 저자는 '맷 릭텔'로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뉴욕 타임스에서 과학기자로 일하며 면역 항암제와 같은 과학, 기술 분야에 다양한 기사를 써왔다고 합니다.

 

 

 

Matt Richtel - The New York Times

Matt Richtel is a health and science reporter for The Times, based in Boulder, Colo.

www.nytimes.com

 

 

저는 번역본을 읽었고 홍경탁 번역자 분께서 본 책을 번역해주셨습니다.

 

맷 릭텔이 집필한 '우아한 방어'라는 책은 면역학 상식들을 쉽고 재밌게 설명해주면서도, 그의 친한 친구이자 암과 오랜 기간 싸웠던 제이슨를 포함한 여러 환자들의 투병 이야기, 그리고 면역계를 이용해 암과의 끝없는 싸움을 함께 해온 면역학자와 의사 분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었습니다. 

 

 

"암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는 질병이지만, 이 책은 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특정 질병이나 부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이들을 한데 묶어주는 특별한 관계, 인간의 건강과 삶의 질 전체를 규정하는 결합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로 면역계에 관한 것이다." - 책 구절 중 , 19p - 
 

 

면역학 관련 내용을 배우거나 관련 책을 읽을 때 언제나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고 제 동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군요. 바로 면역학은 재밌다는 겁니다. 물론 굉장히 어렵다는 건 변함없는 진실이지만, 면역 관련 내용을 읽다보면 마치 '몸'이라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생존을 위한 전투와 전략을 마치 '삼국지' 책을 읽듯이 흥미롭게 읽게 됩니다. 면역계를 다루는 '우아한 방어'라는 책도 마찬가지로 재밌었습니다.

 

출처 : Unsplash, thanks to Birmingham Museums Trust

 

특히 이 책은 세포 이름을 B 세포, T 세포로 지을 정도로 딱딱한 글자를 소화하는 면역학자가 쓴 마치 논문 요약집 같은 책이 아니라 여러 면역학 석학들을 취재해오고 친구의 암 투병을 눈 앞에서 오래 지켜본,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글을 써온 기자가 쓴 글인지라 더 재밌었던거 같습니다. 

 

"면역계를 설명할 때에는 전쟁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면역계는 내부 병력이 유해한 질병과 싸울 때 감시 및 스파이 활동, 국지 공격과 핵 공격 등을 할 수 있는 강력한 세포를 이용한다. 전쟁 비유를 확장하자면, 우리 방어망 역시 자살용 알약으로 무장한 비밀 요원과,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빠르게 반응하는 통신망의 지원을 받고 있다." - 책 구절 중, 20p - 


저자는 책에서 '생명'을 다양한 세포가 가득한 곳에서 벌어지는 '시끌벅적한 축제'에 비유합니다. 그 안에서 외부의 침입 혹은 내부의 고장으로 인해 생명을 위협하는 여러 사건들이 벌어지죠. 이러한 위협으로부터 정면에서 맞서 싸우는 게 바로 '면역계'인데요, 앞서 면역계를 전쟁에 비유하긴 했지만 저자가 말하길 면역계는 '전쟁 기계'라기 보단 '화합을 바라는 평화 유지군'으로 보는게 더 타당하다고 말합니다. 즉, 면역계도 최대한 불필요한 피해와 공격을 줄이면서 악의 무리를 몰아내기를 원합니다.

만약 면역계가 외부 침입자는 모두 제거하는 전쟁기계 였다면, 우리의 장에서 우리의 생존을 돕는 수십억 마리의 박테리아가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들에 대해서도 면역계가 무자비적으로 공격한다면 밥도 제대로 못먹었을 겁니다. 물론, 면역계가 딱 필요한 만큼만 문제만 되는 부분을 정확하게 대응하는건 현실적으로 어렵기에 과도한 면역 반응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도 종종 벌어지곤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면역 세포가 건강한 우리 몸의 세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류머티스 관절염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있죠. 반대로 면역 반응의 지나친 억제는 우리 몸이 '바이러스'와 같은 외부 침입자로부터 적절하게 대처하기 어렵게할 수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말로는 쉽지만 가장 하기 어려운 게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적당히"의 기준이 뭔지가 굉장히 애매하기 때문이죠. 특히, 거대한 역사 속에서 굉장히 복잡하게 진화해온 우리 인체 메커니즘에서 아직까지도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까다로운 생존 위협 요소들을 적당히 제거하긴 굉장히 어려울 듯 합니다. 예로 외부 침입자를 제거하려면 면역반응의 활성도를 높여야 하고, 그렇다고 너무 높였다간 문제가 없는 자신의 조직까지도 피해를 입힐 수 있고, 그렇다고 얼마만큼 면역반응을 활성화해야 딱 필요한 만큼만 외부 위협을 제거할 수 있을지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니.. 이래서 면역이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거겠죠.

 

출처 : Unsplash, thanks to National Cancer Institute

 

 

그렇지만, 우리 몸은 어려운 걸 해내며 인체 메커니즘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왔고 (완벽하진 않지만), 이와 더불어 우리 인간은 과학기술을 통해 백신, 면역항암제 등과 같은 생존을 위한 바이오 기술을 개발해왔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천연두, 독감 등 과거였으면 높은 확률로 사망했을 질환으로부터 우리 몸을 지킬 수 있게 되었고 인간의 수명은 과거엔 가능하지 않았을 수준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노화'를 멈출 수 없는 유한한 시스템이며, 한 생명체가 오래 살기보단 번식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가 DNA를 이어받아 생명을 이어나가도록 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습니다.

생각해보면 매일 같이 규칙적인 식습관과 헬스 트레이닝으로 아주 완벽하게 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이라도 갑자기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면 그냥 죽는겁니다. 그보다는 헬스장은 끊었지만 가기 귀찮은, 그래서 아주 완벽하게 건강하진 않아도 여러 자손을 낳은 사람의 운석에 맞지 않은 N번째 자식이 계속 살아남게 되겠죠. 극단적인 예시를 들긴 했지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 우연의 연속이기에 예상치 못한 상황은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그에 우리 몸은 끊임없이 생존에 대한 위협을 받게 되죠. 

 

이처럼 면역계는 우연의 연속인 세계에서 다양한 위협으로부터 항상,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공격받기 때문에 특정 방향으로 세포가 기능하도록 해야 하는 면역계가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21세기, 인간의 면역계가 대처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세포의 증식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게 되는 '암'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암은 왜 생기는걸까요? 책에서는 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우리의 세포가 분열하고 증식해야 한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면역계로서는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조직 세포를 성장시키면서 동시에 부패하고, 불완전하거나 결함이 있는 악성 세포, 즉 돌연변이를 매우 주의 깊게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포를 우리는 암이라고 한다. - 책 구절 중 -

 

 

출처 : Unsplash, thanks to National Cancer Institute

 

 

 

암이 돌연변이에 의한 것이라면, 간단하게 생각했을 때 세포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으면 되는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허나, 우리 몸에는 수십 조개의 세포가 있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세포의 증식, 분화, 그리고 유전자 발현이 이루어지는데 문제가 생기지 않는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예로, 수많은 물품을 최대한 문제 없게 생산하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라도 모든 물품을 완벽하게 문제 없이 만드는건 불가능하죠. 대기업의 AS센터가 곳곳에 위치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겁니다. 이처럼 우리 몸의 세포도 복제를 거듭하며 돌연변이가 꾸준히 발생하고, 그 돌연변이를 교정하는 방향으로 몸은 진화해왔습니다.

 

 

세포 돌연변이는 몸 속에서 늘 일어난다. 우리 모두 암에 걸린다. 당연히 나에게도 지금 암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돌연변이의 대다수는 죽어 없어진다. 단지 살아남기 적합하지 않은 돌연변이이며, 아니면 면역계가 돌연변이가 외부 물질이라는 것을 밝혀내 파괴하기 때문이다. 호지킨 병의 경우 암은 면역계를 이용하고, 속이고, 심지어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 - 책 구절 중 -

 

 

이처럼 세포의 돌연변이 중 어쩌다가 생존에 유리하게 되고, 면역계를 속이게 되는 그런 전략을 구사하게 된다면 우리 몸은 암세포 증식으로 장기가 파괴되어 더 이상 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길,  완벽하게 나쁜 암세포가 되기 위해선 여러 영역에서 특정한 변화가 나타나는 우연적인 유전적 발생이 일어나야 하며, 예로 생존해서 암세포가 될 가능성이 큰 돌연변이 세포가 우연이 면역세포에게 '나를 공격하지마' 혹은 '나를 보호해주고 보살펴줘'라는 지시를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책에선 그렇게 저자의 친구 제이슨을 죽음으로 몰아간 암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암은 제이슨의 면역계에 치사한 속임수를 썼다. 면역계의 의사소통 경로를 기습하여 제이슨의 몸속 병사들에게 싸우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런 다음 면역계를 이용하여 암을 마치 소중하고 건강한 새 조직인 것처럼 보호하게 했고, 이로인해 제이슨은 죽음에 가까워졌을 터였다." - 책 구절 중 - 

 

 

대표적인 예로, 암세포는 원래 암세포를 제거해야 하는 T 세포에서 CTLA-4가 활성화되게 하여 (항원제시세포(APC)의 B7 분자와의 결합 유도) T 세포에 의한 면역 반응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CTLA-4는 T세포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내리는 곳으로, CTLA-4 선구적 연구원 앨리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우리의 면역계가 암을 막지 못할 수 있다고 합니다.

 

 

""종양은 눈에 보이지 않게 성장하면서 순항합니다." CTLA-4 선구적 연구원 앨리슨은 말했다. 하지만 그때 "어느 지점에서, 종양은 특정한 크기 만큼 성장하여 충분한 산소와 식량을 구하지 못합니다." 앨리슨이 설명했다. 그들은 처해있는 환경에 비해 너무 커버린 것이다. "종양들이 죽기 시작해요." 그리고 대식세포들이 나타나 식균현상이 발생하고, 종양의 유해는 깨끗이 치워진다. 그 때 면역계는 상처를 치유할 때처럼 더 많은 성장의 토대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CTLA-4는 전투병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내린다. 이것은 면역계에 의해 지속되는 악순환이다. 완전 중지. 면역계는 암을 먹이고 키워주기 시작한다. 우리의 '우아한 방어'는 내게 등을 돌렸다." - 책 구절 중 - 

 

출처 : Unsplash, thanks to National Cancer Institute

 

요약하자면 너무 커져버린 종양이 혈관을 통해 산소와 식량을 구하지 못해 죽기 시작해서 유해를 치우려고 면역세포와 면역세포를 위한 식량 자원을 보내자 그 식량자원으로부터 암세포가 다시 증식하는, 그러면서도 CTLA-4의 활성으로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전투에서 승리한 아군이 적군의 시체를 처리하려 시체 처리반에게 식량 자원을 주고 현장으로 보내고, 그 시체 속에서 숨어있던 아직 살아남아있던 적군이 시체 처리반이 자신이 적군인지 인지하지 못하게 한 뒤 그가 가진 식량 자원을 나눠 먹으며 점차 증식하고 그렇게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그런 반전의 전개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밝혀지고 연구자들은 CTLA-4가 암세포에 대한 면역 억제 기능을 수행하지 않도록 T세포 표면에서 발현하는 CTLA-4를 비활성화하는 항체를 개발했습니다. 참고로, 이러한 항체를 분리하여 증식한 단일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y)로 이루어진 약품이 신약 관련 기사를 볼 때 등장하는 '맙(mab)'으로 끝나는 약품이라고 하네요. 즉, 단일클론항체의 약자를 mab으로 쓴다고 합니다.

 

저자의 친구 제이슨은 증상이 악화되자 면역계를 활성화하여 암을 공격하도록 하는 면역치료제인 '니볼루맙(Nivolumab)'을 처방받게 되고, 그 덕분에 종양이 잠깐 사라졌으나 완쾌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암과의 싸움을 계속 해야 했습니다. 

 

나는 면역치료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던 제이슨의 이야기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뉴욕 타임스>에 부고 기사를 썼다. 어쨌든, 면역치료 덕분에 제이슨은 1년을 더 살았다. 하지만 그가 죽은 마당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 책 구절 중 -

 

 

'면역 치료'는 다양한 반응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우리 몸에서 방어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제이슨의 경우처럼 암과의 투쟁은 단지 일 순간에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 반응을 활성화한다고 해서 쉽게 끝나는 것이 아닌 복잡한 싸움입니다. 가끔 광고를 보다 보면 면역력 강화에 좋다, 면역력을 높이세요, 라는 문구들이 많이 등장하죠. 저자는 이에 대해 지적하며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적절하게 활성화되어야 할 면역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책 속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방어가 먹고 싶은 고양이

 

 

본 글에서는 아주 간단히 몇 개의 구절만 인용해오긴 했지만, 면역계의 신비와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좋은 책인 듯하니 시간되실 때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다음에는 이 책을 읽어보려고 하는데 이름부터 굉장히 무섭네요. 본 내용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1) 맷 릭텔 지음 / 홍경탁 옮김, 우아한 방어, 북라이프,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