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글에서는 최근에 재밌게 읽은 과학책인 장연규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님이 집필한 '유전자 스위치'에 대해 간단하게 리뷰해보고자 합니다.
참고로 책 속 내용 정리에 있어 아직 전문 지식이 부족한지라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양해부탁드리며, 발견하신 오류가 있다면 댓글이나 메일을 통해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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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스위치'라는 제목을 언뜻 접했을 때는 괜히 거부감이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전자'라는게 우리 몸의 구조와 기능을 결정하는 데 기여하는 물질이다 보니
유전자를 ON/OFF한다는 것은 괜히 공상영화에서 나오듯 우리 몸의 정보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몸의 '유전자 스위치'라고 여겨지는 책 속에 등장하는 '후성유전 시스템'은 우리 몸이 생존을 목적으로 적절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물론,
밝혀진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유전자 발현의 ON/OFF 스위치를 공학적인 방법으로 조절하여 생존을 위협하는 암과 같은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데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후성유전 시스템'의 정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몸에는 DNA 속의 유전정보 중에서 어떤 것을 사용할 것인지 또는 사용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조절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 시스템이 바로 ‘후성유전 조절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성유전 시스템은 DNA의 유전정보를 읽는 과정에서 유전자별로 사용여부를 결정합니다" - <유전자 스위치> 구절 중
그렇다면 왜 우리 몸은 DNA 속의 유전정보 중 어떤 것은 사용하고 어떤 것은 사용하지 않는 그런 선별적인 유전자 발현을 하는 것일까요?
그냥 다 사용하는 게 정보도 많고 기능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발생학적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선별적 유전자 발현이 작용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가정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 몸의 수 조개 되는 세포들의 유전정보들이 모두 똑같이 사용된다고 가정해봅시다. 인간 사회로 예를 들자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똑같은 교과서에서 똑같은 부분만 공부하며 살아가는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회는 한 가지 전문성만 갖기에 분업이 불가하고, 협력도 불필요해지기에 사회는 생존력을 잃게 되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수 많은 세포들이 모두 똑같은 DNA에서 똑같은 유전자만 똑같이 사용하게 된다면, 다 똑같은 구조와 기능을 갖는 세포가 되어 분업도 안되고 협력도 안되는 그런 문제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DNA 속에서 세포마다 유전자를 다르게 사용하여 서로 다른 세포들로 분화되어 그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몸'이라는 세계에서 기능하며, 때로는 상호작용을 통해 협력도 하는 그런 시스템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과거 세대가 생존의 경험으로 습득한 데이터, 정보, 지식, 지혜를 전수해주는 교과서가 부재한 건 더 문제가 되니 몸의 설계도인 DNA는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그 교과서에서 세포들이 서로 다른 후성유전 시스템이라는 각자의 방식으로 다른 부분을 학습하여 성장 및 기능하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듯을 합니다.
"후성유전 조절 시스템은 수정란의 발생단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 개의 세포인 수정란이 발생을 통해 200여 개의 서로 다른 세포 유형을 만들어낼 수 있는 핵심 원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피부, 근육, 신경 등에 들어있는 세포들은 서로 다른 특징들을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같은 복잡한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후성유전 조절 시스템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유전자 스위치> 구절 중
그렇다면, 후성유전 조절시스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유전자의 사용을 조절하며 '유전자 스위치' 기능을 하는지 궁금해지지 않나요?
왠지 유전자 스위치라고 하니 ON 버튼을 누르면 유전정보를 사용할 수 있게 되고, OFF 버튼을 누르면 유전정보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그런 시스템인 것 같기도 합니다.
후성유전 조절시스템은 그러한 방식이라기 보단 너무나도 긴 DNA를 아주 작은 세포핵에 꾸겨 넣으려다가 발생하게 된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연과학의 관점에서는 몸 속 시스템 중 어쩌다 만들어진 게 부수적으로 특정 환경에서 생존에 엄청난 이점을 가져다 준 그런 식의 진화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본 책에서는 세포핵을 '책장', DNA를 '책'으로 비유합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소중한 우리 몸의 정보들을 책으로 엮어서 책장에 안전하게 보관해두고, 필요할 때 책의 일부를 발췌해서(전사 과정), 필요한 물질을 만들곤 합니다(번역 과정).
즉, 책에 비유되는 DNA를 세포핵에 안전하게 보관하면서 필요한 부분만 전사 과정을 통해 RNA로 복사하고(전사), 그리고 RNA로부터 번역 과정을 통해 단백질을 만들어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진화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central dogma)'라고 부릅니다.
그렇지만, DNA에 담긴 정보들은 너무 많아서 너무 길기에 이를 세포핵에 집어넣기 위해 우리 몸은 '압축 포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압축포장을 하게 되면 DNA로부터 RNA를 만드는 전사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책은 있는데, 책이 압축되어 있어서 읽을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겠죠? 따라서 우리 몸은 압축 포장되어 있는 DNA를 필요할 땐 읽을 수 있게 포장을 풀어서 전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압축포장을 하거나, 압축포장을 풀거나 하는 방식으로 유전자의 전사를 조절하는 과정을 '후성 유전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후성유전 시스템은 DNA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포장을 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피를 줄이는 데만 집중하여 압축포장을 하게 되면 DNA를 RNA로 전사하고 유전정보를 해독하여 단백질을 만드는 것이 어려워지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후성유전 시스템이 전사 과정의 총괄 관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후성유전 시스템은 상황에 따라 포장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전사여부를 결정할 권한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전사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은 ON/OFF 스위치 방식인데, 전사 ON/OFF 스위치를 설치하는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는 메틸기를 부착하거나 떼는 것입니다." - <유전자 스위치> 구절 중
결국 압축포장을 결정하는 ON/OFF 스위치 방식 중 하나는 메틸기를 부착하거나 떼는 것인데, 이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은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러한 ON/OFF 스위치는 세포가 신경세포로 기능할 것인지, 장세포로 기능할 것인지와 같은 세포 정체성을 결정할 뿐 만 아니라 우리 몸에 외부 병원균이 침입했을 때 면역 관련 유전자를 ON하여 전사를 촉진해 항균물질을 만드는데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병원균은 오히려 이러한 인간의 후성유전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전략으로 자손을 많이 만든다1)고 하네요.
그만큼 후성유전 시스템은 우리 몸을 지켜내기 위한 생물학 연구에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어떤 유전자를 사용할지 결정하는 후성유전 시스템의 변화가 생식세포에서 발생하게 되거나 뇌에 각인되면, 후성유전으로 획득된 형질을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인간의 경험이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주고, 자손에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포에 생긴 후성유전학적 변화는 개체의 형질 변화를 일으키며, 특히 생식세포에 새겨진 후성 유전학적 변화는 자손에게 되물림됩니다. 즉 후성유전으로 획득된 형질이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것을 다루었습니다. 또한 유아기에 겪은 경험으로 생긴 후성유전적 변화는 뇌에 각인되며, 생식세포에 생긴 변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손에 유전되는 신기한 현상도 일어납니다. 인간의 경험이 뇌에 각인된다는 것은 사춘기 이전의 성장 환경과 교육 환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과학적인 근거로 설명해줍니다." - <유전자 스위치> 구절 중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인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마이클 센델 교수가 '능력주의'의 모순을 비판하며,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성공이 오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듯 했는데
그에 더해 개인의 DNA도 능력주의의 모순의 근거인가 했는데, 이 DNA의 유전정보 사용이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건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개인의 선택과 노력도 결국 성장환경과 교육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이 참 난제인 것 같습니다. 결국 사회적 성공이 오로지 자신만의 노력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잊지 않고, 본인은 그럴만한 사람이라는 오만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인이 능력있는 DNA를 갖는 행운과, 좋은 환경에서 자라서 바람직하고 발전적인 후성유전 시스템을 얻게된 행운이 겹친 것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사람은 자신이 가진 걸 당연시 여기고 못 가진 걸 더 갖고 싶어하는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서 서로의 공정이 다르게 되고 사회적 격차는 벌어지며 이상과 현실은 가까워질 수 없게 되어버린걸지도 모릅니다.
마이클 센델 교수께선 책에서 능력주의의 모순을 비판하며 이상을 제시하지만, 이에 대한 현실적인 해답을 제시하진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거리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암튼 다시 돌아와서 이러한 후성유전 시스템은 '암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특히 암줄기세포의 표적분자와 후성유전인자 사이에 상호작용을 한다고 밝혀진 만큼 후성유전을 조절하는 암줄기세포 치료제를 만들면, 기존 항암체의 치료 효험을 높일 수 있을 것1)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암 줄기세포에서만 주로 발견되는 표적 분자에는 신호전달 단백질, 세포막의 표면 단백질, 전사인자, 해독 단백질 등이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후성유전적 조절인자들이 암 줄기세포의 표적 분자와 상호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후성유전적 조절인자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제어하는 약물을 개발한다면 획기적인 암 치료제가 될 것입니다. 특히 후성유전적 기술로 개발한 암 줄기세포 치료제를 기존의 항암제와 병행하여 처방한다면 암 환자의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 <유전자 스위치> 구절 중
무엇보다 악성 종양에는 대부분 암 줄기세포가 들어있고, 이러한 암 줄기세포는 항암제를 밖으로 배출하는 펌프기능이 발달했다는 점1)에서 후성유전 시스템의 활용이 유전학적 방법을 통한 암 치료의 지평을 확장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작년 저널 <CELL>에 발표된 한 논문에서 저자 싱클레어 교수는 "노화가 일어난 세포에서는 후성유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정상세포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라며, 노화된 쥐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던 후성유전시스템을 재활성화하였더니 쥐가 회춘했다고 주장합니다1).
물론, 책 저자이신 장연규 교수님 말씀처럼 쥐에서 효과가 있는 것이 사람에선 효과가 없을 수 있고, 과학인 만큼 정말 사실인지 철저한 검증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후성유전 조절 시스템은 우리 몸이 정체성과 기능을 유지하고 보존하도록 하는 생존에 직결된 몸의 필수적인 시스템이자, 암, 노화 등의 질병 연구에 있어 메커니즘을 밝히거나 공학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중요한 몸의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책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보았는데, 논문을 읽는 연습을 하면서도 흥미를 위해 이렇게 책도 가끔씩은 읽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1) 장연규, 유전자 스위치, 히포크라테스, 2023.10